pencil and colored pencil on paper, 469.5×330.5(mm), 2019

pencil and colored pencil on paper, 469.5×330.5(mm), 2019

세 번째 놀이

Sylvain Chauveau - Pauvre Simon

10년 전쯤이었다. 음악 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비뚤어지겠다는 일념 하나로 사는 사람처럼 만나면 시종일관 불평만 늘어놓던 녀석이었다. 텅 빈 표정에 높낮이 없는 말투로 늘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던 녀석이었지만, 꽤 솔직한 친구였다. 한 번씩 음악을 추천해주곤 했는데, 그때에만 볼 수 있는 그 천진한 표정이 진짜 그 친구를 설명해주곤 했다.

가능한 한 힘을 빼고 천천히 귀에 집중하라는 친구의 말을 따라갔다. 들리는 것에 집중했고, 곧 정신이 아득해졌다. 미간 주위를 맴돌던 뭉근한 에너지는 어느 지점에 다다르자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높은 압력으로 내 뒤통수를 쑤욱 잡아당겼다. 음악에서 나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더 이상 익숙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공간에 내던져진 낯선 존재였다. 명치끝이 저렸고, 머리끝까지 뻗치는 전율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음악은 순식간에 그곳의 공기를 바꿔놓았다. 익숙했던 공간은 어느새 낯선 장소로 바뀌고, 경직되고 날 선 모든 것은 힘을 잃었다.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이었지만 경험되는 공간의 성질은 분명 달랐다.


가면

최선을 다해 도망쳤다. 내게서 멀어지기 위해 열정을 쏟았고, 숨을 곳을 찾아 늘 분주했다. 페르소나가 견고해질수록 그림자는 짙어졌고, 껍데기만 남은 텅 빈 표정으로. 눈으로. 늘 웃고 있었다.

20대의 나는 자신을 스스로 외면한 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웬만한 일엔 웃고 넘기며 생각과 말끝을 흐리기 일쑤였다. 다만 그게 본 성격과 거리가 있었는지, 외면하지 않을 용기가 생긴 건지. 언젠가부터 그 편리한 시간들이 왠지 갑갑하게 여겨졌다. 그즈음 그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길에서 그렇게 다시 만나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우리는 닮아 있었다. 시종일관 무표정한 그 친구와 방긋방긋 실없이 웃어대는 나는, 상반된 언어로 허공을 향해 같은 말을 퍼붓고 있었다. 그 친구와 나는 썩 잘 맞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서로의 예민함을 존중할 줄 알았고, 그 배려만큼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서로를 비췄다.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을 따돌리며.

버거운 현실을 마주할 때면 나는 잘 가꾼 예쁜 꽃밭에 들어가 현실을 외면한 채 불안해했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유약했고, 달리 방법을 몰랐다. 옅은 긴장 속에 그 어색한 시간이 지나가기를 애써 기다렸다.

사라질 듯 말 듯, 가면 뒤로 드리워진 은은한 꽃밭은 나의 유약함이 만든 세계를 상징한다. 현실을 외면하고픈 유약함이 만들어낸 공간이지만, 약해진 마음에 양분을 실어주는 땅이 되기도 하는 이중적인 공간이다. 그림은 현실을 피해 몸을 숨긴 동화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내면적 갈등과 불안을 표현한다. 겉으로 보이는 가면을 통해 가면 안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복잡 미묘한 감정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다.


어떤 기시감이 일었다. 내가 속한 공간은 다른 차원으로 전환되듯, 혹은 어떤 알 수 없는 막에 덮이듯, 돌연 공간의 성질이 바뀌었다. 그 공간들은 물리적으로 같은 곳임에 틀림없었다. 다만, 내가 있던 공간은 더 이상 내가 속한 공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음악에 몰입될 때와 빠져나올 때 일어난 그 기시감은, 빛 속으로 사라질 것 같은 아릿한 배경과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마스크의 표정을 통해 그림으로 표현된다.

음악을 통해 기시감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음악을 포함한 여러 상황이 맞물려 우연히 일으켜졌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당시의 나는‘ 무언가 잘못됐어.’라는 막연한 느낌을 지닌 채 하루하루의 일상에 내몰려 있었고, 음악에 몰입되는 순간 그 뭉뚱그려진 기분에서 해방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오래전 기억이라 왜곡된 부분이 있겠지만 지금의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내용은 그렇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의 정신구조를 설명하면서 페르소나persona 와 그림자shadow 개념을 이야기한다.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썼던 가면을 뜻하는 말이다. 자아가 외부세계와 소통할 때, 유약한 자아를 대리하여 사회와 관계를 맺는 외적 인격이 페르소나인데, 이는 그 사회와 집단이 요구하는 역할, 의무 등으로 만들어진 이상적인 인격을 말한다. 반면, 페르소나의 뒤에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한 채 제 모습을 숨기고 은폐하려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 그림자이다.

그 시절의 나는, 페르소나에 의해 드리워진 내 유약한 그림자를 그 친구에게 투사하고 있었다. 친구를 보면 왠지 기분이 언짢았고, 무언가 잘못된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이 감돌았다. 그즈음 이 음악을 듣게 됐고, 친구에게 비친 내 유약함이 보였다. 친구의 퉁명함과 불평은 나의 지나친 예의와 과장된 상냥함 위로 겹쳐졌다. 상반된 두 모습은 하나의 이미지로 합쳐지며 마치 겁에 질린 새끼 고양이처럼 하악질을 하고 있었다.

‘건들지 마, 나 무서운 고양이야!’

배경 음악: 최상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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